사라지는 말 방언, 남겨진 마음
한무룡 컬럼위원 기자
입력 2025.09.05 pm03:52 기사승인 2025.09.08 am07:36
방언은 지역이나 특정 계층에서만 쓰이는 언어 체계다. 겉으로 보기엔 사소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한 지역의 정서와 삶의 방식, 공동체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학과 예술, 그리고 우리의 말 속에 스며든 방언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방언 연구는 늘 소외되어 왔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연구 여건은 열악하고 시간은 수십 년이 걸린다. 그럼에도 묵묵히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사회는 빚을 지고 있다.
서울대 명예교수 이익섭(84)은 그 빚을 대신 갚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 11년간 자택인 용인에서 강릉까지 수시로 운전해 다니며, 사라져가는 강릉 방언을 채집했다. 젊은이도 감당하기 어려운 여정을 노교수가 홀로 감당했다. 책을 펴낸 뒤 “끔찍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재미도 없고 돈도 생기지 않는 일, 그러나 그가 느낀 보람은 남달랐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중 표준어 사전에 없는 단어를 발견하거나, 잘못된 어원을 바로잡을 때 그는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만난 옛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말은 이제 책 속에 살아 있다. 『강릉 방언 자료사전』은 단순한 언어 기록을 넘어, 한 시대의 삶과 감정을 담은 문화유산이다. 이 교수는 그들의 말을 잘 받아 적었고, 우리는 그 덕분에 잊혀진 언어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회 곳곳에는 경제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 방언 연구도 그중 하나다. 이런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모두 경제적으로 챙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따뜻한 마음으로 찾아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넬 수는 있다. 말은 사라져도 마음은 남는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기록한 사람 덕분에 우리는 잊혀진 말과 다시 만날 수 있다. 방언에 빠진 한 사람의 11년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화적 빚을 갚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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